081-숲과 강아지족 이스타니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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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박물관 애들이 아니라 제가 직접 서술하던 옛 방식을 다시 쓸 생각입니다. 그동안 생각을 해 봤는데, 박물관 안내원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무리하게 캐릭터성을 부각하려다보니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부침하고 글수준은 글수준대로 수직 급하락을 하는 나쁜점이 있더군요. 그래서 당분간은 예전 서술방식을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그렇다고 박물관 아이들 캐릭터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얘네들도 애착이 있는 캐릭터들이라서요. 일단은 '보류'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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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재료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근대 이전의 삶을 보면 가히 나무 문명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습니다. 나무는 생명을 잇기 위한 재료였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이용해 음식을 익혀먹었고 몸을 누일 집을 지었으며 다른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나무는 문명의 태동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태워 금속을 녹여 합금을 만듦으로써 농업과 전쟁에 일대 혁명을 이루어냈고 항아리를 구워 식품을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이 땅에는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문명은 나무를 기반으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이 성장하고 문명세계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나무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무를 포식하며 자라난 문명은 도시화를 촉진했고 도시화는 또다시 엄청난 양의 나무를 갈구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명이 성장하고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면 갈수록 그 주변 삼림의 황폐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삼림이 고갈된다고 해서 목재수요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보다 나무를 덜 쓰는 건축공법을 도입하고 새로운 제련법을 도입한다한들 건물을 보수하고 난방, 취사에 들어가는 나무를 아끼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무가 부족하면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팍팍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삼림의 유실은 문명을 지탱하는 한 축, 농업에도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나무가 사라진 땅은 토양을 결속시켜 줄 매개체가 사라진 셈이었고 비가 올 때마다 빗물에 토양이 유실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한 하천의 범람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토양의 양분이 씻겨 내려가면서 안 그래도 농사로 인해 유실된 지력의 고갈이 더 빨라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우제국의 붕괴였습니다. 여우제국이 들어설 당시만 해도 여우 서식지 북부와 중부는 풍부한 삼림으로 덮혀있었습니다. 여우제국은 이러한 삼림을 바탕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짓고 뛰어난 품질의 청동기와 도기를 전 이스타니아 세계에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우제국이 전성기로 들어설 무렵 이미 북부와 중부 일대의 삼림은 거의 초토화 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특히 중부일대가 가장 문제였는데, 이 지역은 관개농법을 통해 비료없이도 경이적인 생산력을 자랑하던 제국의 곡창지대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벌채로 인해 표토가 비에 쓸려 나가면서 지하의 암염광이 노출되자 중부일대는 지속적인 염화현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염화현상에다 한번 들어온 물을 빙글빙글 돌려 최대한 활용하는 관개농업의 특성이 합쳐지면서 단 300년 만에 중부의 밀 생산능력은 전성기의 6분의 1로 추락하였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버리고 유랑에 나서야 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여우족 도시들이 이제는 폐도시가 되거나 조그마한 마을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삼림의 황폐화로 목재 공급이 힘들어지면서 대량의 목재를 필요로 하던 수도의 도기산업과 청동산업도 같이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산업의 붕괴로 인해 국제 무역망이 조각나면서 제국의 한계수익성은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몰락해가던 제국은 바다의 민족과 켄타오로스족의 도래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게 됩니다.


강아지족도 그런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센테라를 중심으로 강아지 마을이 들어섰을 때만 해도 센테라와 그 주변은 하늘을 가릴 정도의 소나무와 참나무 숲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아지족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센테라를 중심으로 강아지 왕국이 성립하면서 이 삼림들 또한 벌목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센테라 서부의 삼림이 고갈되었고 그 다음에는 동부의 삼림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강아지족이 남부로 진출할 즈음에는 남부의 삼림도 경작지 개간과 양 사육으로 황폐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강아지족도 삼림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삼림의 황폐화를 우려하는 기록을 남겼고 강아지 왕국 중앙정부는 지속적으로 나무를 아껴 쓸 것을 당부하는 서한을 지방행정관들에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나무에 대한 수요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았으며 강아지 왕국 수뇌부는 우려는 하되 딱히 뾰족한 수는 없었기에 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센테라 주변은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우제국이 겪어야 했던 염화현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비로 인해 토양손실이 심각했고 토질이 지속적으로 나빠져 이미 왕국 전성기 즈음에 센테라 주변의 밀과 보리농업은 쇠퇴한지 오래였습니다. 삼림벌목에 따른 토질하락은 남부까지 이어졌고 인구압에 시달리던 강아지 왕국으로서 농경지 손실은 국가의 존망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렇지만 몇백년에 걸쳐 누적되어온 현상에 강아지 왕국은 굼뜨게 반응했습니다. 딱히 눈에 보이는 파멸이 다가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세르비우스 2세의 등장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르비우스 2세를 흔히 명군이라고 부릅니다만, 그가 명군이라고 불릴 자격을 갖춘 것은 단순히 '대대의 탄생'으로 대표되는 군제개혁이나 루키아 반란의 진압에 따른 군사적 명성에 기인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최대 업적은 그때까지 마구잡이로 실시되던 강아지 왕국의 확장정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부여하였다는 것에 있습니다. 세르비우스 2세 이전 강아지 왕국의 확장정책은 인구압에 따른 자연확장정책이었습니다. 사실, 이 확장정책은 '정책'이라는 용어의 사용도 부적절한 것이 이 확장은 인구압에 버티지 못한 강아지족 자유민들이 새롭게 살 땅을 찾아 무질서하게 자연방출되는 것이었고 왕국 수뇌부가 한 일이라고는 그냥 인구가 많은 곳에 행정망을 정비한 정도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르비우스 2세는 이 자연확장을 국가에 의한 정책적 확장으로 변환시켰습니다. 이제 국가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에 군대를 보내 토착민을 정리해 버린 후 주민들을 이주시켜 자신의 땅으로 삼았습니다. 이 무자비한 군대는 삼림과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서부로 나아가면서 자신의 발 밑에 채이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습니다. 수많은 토착민들이 이에 저항했지만 결국은 강아지 왕국의 신민으로 남거나 학살당했습니다. 카라프라우니족만이 3번에 걸친 대혈투 끝에 간신히 강아지 왕국의 동맹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 뿐 찬란한 역사를 자랑했던 여우족 7도시 연합은 아예 대학살 끝에 존재 자체를 말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강아지족의 여우족 대학살을 두고 종족적인 증오를 거론합니다. 같은 개과 생물인 여우족은 대량학살했지만 아예 다른 이종이었던 인간족은 살아남았다는 게 그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리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은 그저 깊은 탐구를 하기 귀찮아 하는 게으른 학자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강아지 왕국이 저렇게 무자비한 정복전쟁을 추진했던 까닭은 기실, 강아지족도 그만큼 생존의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카라프라우니족이 훨씬 더 대규모의 부족이었다면 그리고 여우족 7도시 연합이 작은 도시국가 연합에 불과했다면 지금쯤 사람들은 카라프라우니 대학살을 논하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즉, 카라프라우니족이 살아남은 것은 종족 구성원의 수가 적고 그녀들이 쓰는 목재의 양이 강아지족이 보기엔 충분히 그들이 쓰는 양과 공존 가능할 정도로 미미한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여우족 7도시 연합이 가지고 있던 대규모 배후지에는 막대한 양의 삼림이 있었지만, 그 양은 강아지족과 여우족이 공존하며 쓰기에는 모자란 양이었습니다. 결국 목재를 풍족하게 쓰기 위해서는 강아지 왕국이나 7도시 연합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세르비우스 2세는 7도시 연합에 대한 말살을 추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만 세르비우스 2세의 확장정책은 끊임없는 목재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확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이미 확장에 따른 한계수익성은 세르비우스 2세 치하에서도 악화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르비우스 2세의 아들이었던 티투스 시대에 서부로의 확장이 중단되었던 것도 더 이상 확장해봐야 정복지의 산물을 센테라까지 수송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이익을 초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확장정책의 종결은 이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저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게다가 세르비우스의 확장정책은 또다른 악순환을 잉태하고 말았습니다. 확장에는 병사가 필요했고 병사를 무장시키기 위해서는 나무를 땔감으로 무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결국 확장에 따른 군비충당을 위해 나무수요는 더 늘어났고 이러한 나무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확장을 거듭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강아지족이 일찍부터 석탄의 활용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석탄의 존재는 왕국 중기에 많은 학자들이 목재의 대체재로 거론하면서 알려졌지만 그동안은 목재에 비해 비용 대비 채산성이 맞지 않아 캐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왕국 후기부터 강아지 왕국의 확장이 중단되면서 점점 치솟는 목재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석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와 동시에 강아지 공화국은 지속적으로 삼림을 찾아나서는 노력을 경주하게 됩니다. 먼 훗날 강아지 공화국이 신대륙 북부에 진출했을 때 북부 식민지에 본국과 같은 대우를 해 줬을 정도로 영유에 집착을 한 이유도 신대륙 북부에 울창하게 자리잡은 삼림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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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려고 토탈워 카페의 염화현상에 대한 글을 파고 무장공비님께서 추천해 주신 숲의 서사시를 읽었는데 진짜 삼림벌목에 따른 염화현상이 무서운 것이네요. 특히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가히 염화현상의 끝장을 보여줍니다. 삼림벌목 + 염화현상 + 관개수로가 짬뽕되면 문명 하나 훅 보내버리는 건 일도 아닙니다 ㄷㄷㄷ

덧글

  • 앨런비 2012/05/23 10:11 #

    슴가가 업ㅂ음(...)
  • 모에시아 총독 2012/05/23 10:20 #

    ㅇㅇ 갑옷입으려면 슴가따윈 장애물임.
  • 로자노프 2012/05/23 10:59 #

    확실히 염화라는게 무섭기는 하지요...
  • 모에시아 총독 2012/05/23 11:54 #

    이번에 숲의 서사시 읽으면서 절실히 느끼고ㅇ있습니다.
  • 셔먼 2012/05/23 15:37 #

    지나친 벌목으로 인한 토양의 염화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로마에서도 잘 나타나죠. ㄷㄷㄷ
  • 모에시아 총독 2012/05/23 19:01 #

    넵, 특히 메소포타미아는 정말이지 ㄷㄷㄷ하더군요. 어떻게 그 풍요롭던 땅이 그렇게 황폐화될 수 있는 건지 경악스러웠습니다.
  • 리리안 2012/05/23 19:06 #

    정말 벌목이 지역의 운명을 바꾸고 말았지요...유럽은 목재를 향한 그 열정이 식민지를 털어먹었고...;;
  • 모에시아 총독 2012/05/23 19:14 #

    그렇게 털다가 그마저도 감당이 안되어서 결국 석탄으로 전환하고 나서야 간신히 목재에 대한 의존량을 상당부분 줄이는 데에 성공했지요. 그러고보면 의외로 인류역사에 있어 석탄의 공헌은 굉장히 클 지도 모르겠습니다.
  • Frameworks 2012/05/24 07:57 #

    정말 분자생물학이나 생태학 등의 발전이 역사 분야의 패러다임에 이렇게 침투해오는 걸 보면 세상이 참 빨리도 변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다만 그 속도에 썩 빨리 따라오지 못하는 지식 전파 경향을 보면, 앞으로도 사람들 간에 도는 지식의 흐름들이 그렇게 빨리 변화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우르크 문명의 길가메시 서사시 토판에 등장하는 '훔바바'라는 괴물(?)은 본래 길가메시 치세에 정복당한 민족이 섬기던 신의 이름이었다고도 합니다. 삼목 숲의 훔바바 이야기가 물론 전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다른 맥락 속에 있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일단은 생태학적 비유로 사용하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5/24 08:42 #

    그러고보니 학계와 일반 대중 사이의 지식괴리가 상당히 벌어진 것 같습니다. 학계에서는 20~30년 전에 논파된 사항이 일반에서는 이제야 화제가 되거나 혹은 아직도 논파당했던 설이 돌고 있다던가....

    훔바바아재(?) 이야기는 저도 어딘가에서 들었습니다. 제가 읽고 있는 숲의 서사시에서도 그런 뉘앙스로 설명하더군요. 거기서는 문명이 삼림을 집어먹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 Frameworks 2012/05/24 11:38 #

    네입, 저도 숲의 서사시에 인용된 훔바바 얘기는 확실히 흥미 깊게 봤던 대목이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언급한 대목도 거기에 관해서입니다. 석탄소요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면, 아무래도 여우왕국 중북부 어디선가는 코크스 제조기술도 발명되겠지요. 제철기술 전반도 이스타니아 세계 내에 확산될 것이고요.(그에 따라 환경파괴 경향도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고......) 다만 북부 식민지에 대한 대우는 제국주의적인 측면을 그대로 살리고 가는 게 화폐경제의 영향이나 이후 식민지 독립을 설명하기 더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개했던 여우교의 창세기는 훗날 '인류는 지구의 막내자식으로서~~ 우리는 창세기 때와 똑같은 잘못을 현재에도 저지르고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우리가 지난 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는 연설의, 생태학적인 측면을 염두에 둔 복선이기도 합니다.

    생태학에 관해서 더 공부하시다 보면 비단 염화현상 뿐만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사이클이 자연환경의 소모와 어떤 식으로 교류하고 있는지도 더 알게 되실 듯.(...) 실상은 지층이나 수질 문제 등 과거에도 훨씬 더 끔찍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우교가 기독교 세계로부터 그 세력을 탈환하는 데 전문적 보편교육 기관(대학)의 등장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기술하고 싶습니다만, 모에시아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이것과 여우왕국 북부의 궁핍, 여우왕국내의 종교대립을 통해서 개신교의 형성(된다면 아마도 교리 특성 상 강아지 공화국 쪽으로 급속히 전파되지 않을까 싶지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한 번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5/24 19:22 #

    석탄사용은 제가 아직 큰 틀만 잡고 있을뿐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의논이 필요한 사항입니다. 고로 변화의 여지가 있지욤. 식민지에 대한 대우는 현재로서는
    강아지 공화국은 직할령으로 식민지라기 보다는 본국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말씀하신 제국주의적 측면은 아직 발현될 여지가 없습니다. 신 오를레앙을 중심으로
    하는 여우왕국의 남 에스카르고 식민지가 왕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결정적 도움을 준 것이 북 에스카르고 직할령에 있던 강아지 공화국군이었으니까욤.
    다만, 이 북 에스카르고 직할령은 계속 직할령으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먼 훗날 강아지 공화국이 파시스트화(...)하여 막장루트를 타고 있을 때 이 북 에스카르고
    직할령은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진짜 먼 미래의 이야기라....

    그리고 대학의 경우라면 이미 강아지 공화국의 수도인 센테라와 나코라 가문의 수도 아모리움 그리고 브란덴부르크 대주교령에 각각 대학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학들은 보편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센테라 대학의 경우 고급관료를 키우는 교육기관적 성격이고 아모리움 대학은 군사대학의 성격이 짙으며
    브란덴부르크의 폼메른 대학은 신학대학이기 때문에 여우아재께서 제시하신 전문적 보편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은 아직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만약 여우교에서 보편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을 세우고 그 위상을 정립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瑞菜 2012/05/26 21:01 #

    총독각하께서 뭔가를 아시는 군요.
    자고로 작업은 웃통을 벗어붙이고 해야 제맛이지요!!

    그런데 강아지족이 개족보라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개족보라니요!!
  • 모에시아 총독 2012/05/26 23:08 #

    원래 강아지족은 개족보가 당연하지 말이빈다. 가톨릭 전래 이전의 강아지족의 결혼관념은 남자나 여자나 정조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지 오래였지요~
  • Qoo 2012/05/30 17:51 #

    그로케 보류먹은 귀염둥이들은 선물전용으로 전락하는데...(먼 산)

    저는 하도 안쓰니까 자케들을 다 잊어버렸지 뭐에요. 헤헤헤헤헤;;;;

    여전히 탄탄한 설정력! 많이 배워요.ㅠ_ㅠb 감사하옵니다.
  • 모에시아 총독 2012/05/30 20:33 #

    조만간에 우리 안내원들은 다시 등장시킬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그리고 저도 Qoo님의 그림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ㅂ'
  • 檀下 2012/05/31 21:09 #

    괜히 중세 영주들이 숲을 미친듯이 아낀게 아니죠. 비단 환경문제뿐만이 아니라 미시적으로 보더라도 정말 평야가 비옥해서 방목도 되고 농사도 할 수 있을 정도면 몰라도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높은 농업쪽에 우선적으로 평야를 배정한다고 치면 단백질 섭취는 숲에서 방목하는 돼지나 사냥감(이건 사실 영주 차지였겠지만)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송로버섯이라든가 각종 임산물도 영주의 재산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잘 가꾼 숲 하나가 비옥한 경작지에 꿀릴게 없죠.
  • 모에시아 총독 2012/05/31 23:55 #

    생각해보니 중세까지는 돼지를 숲에 방목해서 키웠었군요. 음, 이걸 잘 활용하면 여우왕국 및 강아지 공화국 내의 농업혁명에 따른 농경지 확대가 결과적으로 개인 당 섭취가능 단백질을 줄이는 결과로 갔다고 하면 또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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